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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 가는 길] 콩쿠르의 계절

어느덧 벚꽃이 떨어지고 철쭉이 졌다. 아침저녁 선선하고 낮에는 더운 초여름 날씨가 이어졌다. 파릇파릇 돋아난 신록처럼 클래식 음악계에 반가운 소식들이 해외에서 전해졌다. 4월 13일 피아니스트 가주연이 스페인 하엔에서 열린 프레미오 하엔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결선에서 살바도르 바스케스가 지휘한 말라가 필하모닉과 쇼팽 협주곡 2번을 뛰어나게 연주했다. 상금 2만 유로 외에도 낙소스에서 음반 녹음, 스페인과 독일 지역 연주가 잡혔다.   20일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이승원이 우승했다. 결선 무대에서 브람스 교향곡 2번 1악장과 카를 닐센의 ‘가면무도회’ 중 ‘수탉의 춤’을 지휘했다. 콩쿠르 우승 상금 2만 유로 외에 세계 24개 주요 오케스트라 지휘를 부상으로 받았다.   26일에는 전채안(바이올린), 박은중(바이올린), 장윤선(비올라), 박성현(첼로)으로 구성된 아레테 콰르텟이 프랑스 리옹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상금 1만 유로와 청중상, 현대곡상, 지정곡 해석상 등 특별상까지 휩쓸었다.   젊은 연주자들의 땀과 눈물이 빛나는 무대, 콩쿠르의 계절은 계속된다. 캐나다 몬트리올 콩쿠르가 5일 시작돼 16일까지 펼쳐진다. 2016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2위, 2021년 피아니스트 김수연이 1위, 2023년 바이올리니스트 최송하와 이수빈이 각각 2위와 3위에 올랐었다. 올해 종목은 피아노. 19~29세 나이의 12개국 지원자들 가운데 24명이 본선에서 겨루는데, 엘리아스 애컬리, 전세윤, 김대원, 신승민이 이름을 올렸다.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인 손민수가 심사위원단에 포함됐다. 1라운드에는 리사이틀, 준결선에서는 실내악과 리사이틀, 결선에서는 시안 장이 지휘하는 몬트리올 심포니와 협주곡을 연주한다.   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가 개막해 다음달 12일까지 계속된다. 재작년 최하영(첼로), 작년 김태한(바리톤)에 이어 한국이 3연속 우승자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전 세계 지원자 290명 중 70명이 선정됐고 그중 참가를 포기한 지원자를 뺀 63명이 1라운드부터 겨룬다. 본선에 오른 한국인은 7명. 최하영의 동생인 최송하, 작년 롱 티보 콩쿠르 2위에 입상한 유다윤, 올해 슈투트가르트 콩쿠르 우승자인 임도경, 에스더 양, 오해림, 김은채, 김하람이다. 작년 대회엔 심사위원 중 조수미가 포함됐었는데 올해는 강동석과 이경선 두 명의 한국인 심사위원이 초청됐다.   콩쿠르 입상자들의 이야기엔 공통점이 있다.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곡을 많이 배웠고 실력도 향상된 것 같다”는 내용이다. 참가자들 모두 자신의 음악인생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 수상의 영광은 그 뒤에 따라오는 선물 같은 거라고 여기면서. 류태형 /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회 가는 길 콩쿠르 계절 콩쿠르 우승 실내악 콩쿠르 무대 콩쿠르

2024-05-08

[음악회 가는 길] 하루키 신작 소설과 침묵의 음악

무라카미 하루키 6년 만의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화제다. 작품 속에서 음악을 잘 다루기로 정평이 난 하루키의 신작은 음악팬들에게도 관심사다. 재즈바를 운영했던 하루키는 재즈·팝 등 대중음악 분위기를 잘 살린다. 오자와 세이지와 대담집, 클래식 LP책을 냈을 정도로 클래식에 대한 조예도 깊다.   하루키가 작품에서 최초로 언급한 클래식 음악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이다. 1979년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온다. 『1973년의 핀볼』에는 비발디 ‘조화의 영감’이 흘렀다. 『양을 쫓는 모험』에는 스크랴빈 피아노 소나타 2번과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는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흐른다.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댄스, 댄스, 댄스』에서는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서곡,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는 로시니 ‘도둑까치 서곡’과 바흐 ‘음악의 헌정’,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대공’, 『1Q84』에서는 야나체크 ‘신포니에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는 리스트 ‘순례의 해’,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모차르트 ‘돈 조반니’ 등 다양한 작품을 소개했다. 번역가 제이 루빈의 말처럼 하루키는 이들 음악을 ‘정신 속에 존재하는 시간과 무관한 다른 세계, 깊은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최적의 수단’으로 쓰거나 배경음악으로 사용해 독자들 뇌리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도록 만든다.     그러니 그가 신작에서 어떤 음악을 썼을지 출간 전부터 관심사였다. 막상 읽어보니 전작에 비해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과 존재감은 왠지 희미하다. 400페이지 가까이 침묵 속에서 책장이 넘어간다. 독자의 청각은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예민하게 벼려진다.   이름 없는 커피숍에서 틀어 놓은 재즈 채널에서 나오는 폴 데스몬드·제리 멀리건·쳇 베이커 등의 연주나 역시 FM에서 나오는 이 무지치 연주의 비발디 ‘비올라 다모레를 위한 협주곡’,  보로딘 현악 사중주 등은 직접 음반을 트는 것보다 수동적이어서 창백하게 다가온다. 가끔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가 어울릴 듯한 정경이다’ 등의 우아한 분위기 묘사에 음악이 쓰인다.   끝까지 읽고 나면 하루키의 이번 작품은 그 어떤 전작보다도 고요함을 유지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관현악의 다이내믹함보다는 무반주 독주곡의 정서에 가깝다.     70대의 하루키는 신작에서 침묵도 음악의 한 표현 방법이라고 주장한 걸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전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메아리처럼 울리는 ‘활자의 음악’을 의도했을지도 모르겠다. 류태형 /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회 가는 길 하루키 신작 침묵도 음악 대중음악 분위기 클래식 음악

2023-09-20

[음악회 가는 길] 공연장의 헛기침, 당신은 괜찮은가요

얼마 전 음악회에서 이른바 ‘관크(관객 크리티컬, 공연 관람에 피해를 주는 행동)’를 당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데 계속되는 헛기침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신경 쓰다 보니 연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항의하자니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될 것 같고, 공연히 시빗거리로 번질까 가만히 있었다.   가끔 겪는 일이다. 그럴 때면 공연장 안내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리를 옮겨달라고 부탁한다. 마침 동행이 있어 그대로 2부에 임했다.     참아도 나오는 기침이야 어떡할까. 그와 달리 헛기침은 태도의 문제다. 연주에도 영향을 끼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한 기자회견에서 “공연 도중 기침하셔도 된다. 다만 입을 가리고 해주셨으면 좋겠다. 더 좋은 연주로 보답하겠다”며 연주자로서 불편함을 지적한 바 있다.   유난스러울 수 있다. 클래식 음악 장르의 특징이기도 하다. 확성을 하는 대중음악 공연에선 어지간한 관객 소음은 그냥 넘길 수도 있다. 2시간 내내 작은 소리에도 집중해야 하는 클래식 음악 공연은 다르다. 상대적으로 주위의 소음이 민감하게 다가온다.   연주 중 무대 외의 장소에서 소리를 내면 안 된다. 홀 음향이 좋아 귓속말로 해도 다 들린다. 자신이 내는 소리가 타인에게 어떤 불편함을 주는지 교육받지 못한 어린 초등학생들의 관람 태도도 주위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아이를 동반한 보호자에게 책임이 크다.   긴 연주시간, 복잡한 전개의 클래식 음악은 어린아이들이 집중하기 힘들다. 자녀교육을 위해 아이들을 클래식 공연장에 데려오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동·청소년용 공연을 권하고 싶다. 너무 어린아이를 공연장 객석에 데리고 와 조용히 하라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최근 늘어난 ‘관크’가 있다. 그중 하나는 앙코르 촬영이다. 보통 프로그램이 끝나고 인사하는 커튼콜 때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은 허용된다 문제는 앙코르 연주까지 동영상 촬영을 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 스마트폰에서 동영상 촬영시 ‘삐’ 소리가 연주 감상을 방해한다. 또 하나는 이른바 ‘안다박수’다. 마지막 여운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수와 ‘브라보’까지 외치며 다른 이들의 감동을 훼방 놓는 행위도 기승을 부린다.   해결책은 없을까. 역지사지다. 나만 말고 타인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공연 관람시엔 그 혜택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적어도 공연장에서는 꼭 필요한 문화다. 타인의 감동을 빼앗지 않으면서 나의 감동도 지키는 성숙한 공연장 문화가 절실하다. 불쾌지수 높은 한여름이다. 주위 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는지 나부터 조심해야겠다. 류태형 /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회 가는 길 공연장 헛기침 클래식 공연장 공연장 문화 공연장 안내원

2023-08-09

[음악회 가는 길] 젊은 지휘자의 빛과 그림자

약관의 핀란드 지휘자가 세계 음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의 이름은 클라우스 메켈레(26). 최근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결정됐다. 2020년부터 오슬로 필하모닉, 2021년부터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메켈레는 31세가 되는 2027년부터 RCO의 제8대 수석지휘자 임기를 시작한다. 취임 전까지는 ‘아티스틱 파트너’로서 현재 음악감독이 공석 중인 RCO를 지휘하게 된다. RCO는 영국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선정한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에서 1위에 올랐던 명문악단이다.     젊은 지휘자가 세계 유수의 악단을 책임진 사례가 드물지는 않다. 당장 RCO의 역사를 살펴봐도 빌럼 멩엘베르흐가 24세 때 수석지휘자로 부임했다. 라파엘 쿠벨릭은 25세 때 체코 필하모닉, 사이먼 래틀도 25세 때 버밍엄 시향, 에사 페카 살로넨은 26세 때 스웨덴방송교향악단, 미르가 그라지니테 틸라는 29세 때 버밍엄 시향을 맡았다. 우리나라 정명훈도 31세 때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로 커리어를 쌓았다. 그런 정명훈이 “60세 정도 돼야 조금 지휘를 알 것 같다”고 했었다. 그 말대로 지휘는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한 통찰이 필요한 자리다. 젊은 지휘자의 앞에는 숱한 미지의 시간이 놓여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젊은 시절 없이 곧바로 원숙한 지휘자는 없다. 회사에서 ‘신입’을 뽑을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게 ‘경력’이라는 아이러니는 젊은 지휘자들도 체감하는 현실이다. 청중도 오케스트라 단원도 검증된 지휘자를 원하지만 젊은 지휘자도 지휘대에 서야 한다. 이는 양해와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에 부임한 김은선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재학 시 한 학기에 최소 세 번 프로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할 수 있었고, 이때 많이 ‘깨지며’ 배운 경험이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 제도도 경험 많은 지휘자로 성장하는 궤도에 안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김은선 지휘자는 리옹 오페라에서 키릴 페트렌코(현 베를린 필 음악감독)의 부지휘자로 일한 경험이 지금의 성장에 큰 도움과 영감이 됐다고 말했다. 정명훈도 LA필하모닉에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있으면서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안전한 경험을 담보하는 익숙하고 검증된 무대만 찾는 청중의 보수성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부딪쳐서 깨지며 성장하는 젊은 지휘자들의 무대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마침 비올리스트 겸 지휘자 이승원(32)이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의 부지휘자로 선정돼 오는 9월부터 활동한다는 소식이다. 젊은 지휘자, 부지휘자들의 건투를 빈다. 그들이 향후 좋은 지휘자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점검하고 확충해 나갈 때다. 류태형 / 음악 칼럼니스트음악회 가는 길 지휘자 그림자 부지휘자 제도 수석지휘자 임기 김은선 지휘자

20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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